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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즈미술관 소장 운흥사 범종
반출경위에 대한 학술세미나

기조 발제
네즈미술관 소장 운흥사 범종으로 본 해외문화유산 대책
영담스님 고산문화재단 이사장
서기 1690년, 숙종16년에 당대 최고의 주종장인 김애립 장인에 의해 주조되어,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에 봉안되었던 운흥사 범종이 어떤경로를 통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東京都 港區 南靑山)에 위치한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경남 고성군에 자리한 운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며,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입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께서 6천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던 호국사찰이며, 당시 이순신장군도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세 번이나 운흥사를 방문하여 사명대사를 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운흥사는 천오백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앞장섰던 호국사찰인 운흥사에 봉안되었던 범종이, 자취를 감추지 않고 일본 동경의 네즈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 합니다. 만약에 네즈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찾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네즈미술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네즈미술관은 1940년에 설립이 되었는데, 설립당시부터 운흥사 범종이 보관되었다는 미술관측의 이야기에 의하면, 운흥사 범종은 적어도 1940년 이전에 운흥사에서 일본으로 반출이 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출경위를 알 수 있는 네즈미술관의 범종 입수기록이 1945년 3월 미국의 도쿄 대공습으로 인해 불에 타버려 더 이상 확인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의 2016년 12월 31일 현재 통계에 의하면, 국외에 소재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20개국에 167,968점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일본에 있는 문화유산이 71,422점이며, 미국에 46,641점, 독일에 10,940점, 중국에 9,825점, 영국에 7,955점, 러시아에 5,633점, 프랑스에 3,319점등이라고 합니다. 문화재청은 이 통계를 제시하면서 이 현황은 정밀조사 결과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즉 실제 해외 소장자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감안하면, 확인할 수 없는 문화유산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가운데 2016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국내로 환수된 문화유산은 12개국 10,026점이라고 합니다. 이 통계에 의하면 해외 문화유산의 환수율은 0.06%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국내로 환수된 10,027점의 문화유산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기증을 받아서 환수한 것이 5,948점, 협상에 의해서 환수된 것이 3,319점, 구입하여 환수한 것이 749점이라는 것입니다. 전체 환수문화유산의 60%가 기증을 받아서 환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증을 통해 환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 통계를 보면서, 결국 해외문화유산의 환수도 부처님 가르침과 같이 해외 소장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환지본처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해외문화유산의 환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탈, 강탈, 밀반출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약탈, 강탈된 문화유산 반환운동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단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 가운데 임진왜란이나 일제 식민지때 일제에 의해 약탈된 것도 있고,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프랑스와 미국에 의해 약탈된 것도 있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밀반출된 사례도 있습니다.
유네스코 협약에는 약탈된 문화유산의 경우 원래 주인인 나라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불법으로 유출되었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실제 이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해외에 소재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가운데에는 정확한 통계나 조사가 없지만, 상당수의 문화재들은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구입을 하거나 기증을 받아서 소유하게 된 경우입니다.
따라서 저는 해외문화유산에 대해 무조건 약탈, 강탈, 밀반출의 용어를 써가면서 환수를 촉구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해외에 소재한 문화유산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지 경위를 조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선조의 얼과 정신이 담겨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소중합니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과 혜명이 담겨있는 불교성보문화유산은 단순한 문화유산을 뛰어 넘어 정신적 귀의처로서 가치를 매길 수가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저는 그 귀중한 불교 성보문화유산이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외국에 있다고 해서 그 가치가 저하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인연에 의해 외국으로 가게 된 것이고, 외국으로 나가게 된 경위를 밝힐 때까지는 귀중한 성보문화유산이 위치한 그 자리에서 공경되고 존중되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에 운흥사 범종이 있는 네즈미술관에 갔을 때 미술관 측에 운흥사 범종이 잘 보관되어서 기쁘다고 하면서 감사의 뜻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전하면서 군수품 생산을 위해 금속 공출령을 내렸고, 그 후 상당수의 사찰에서 강제로 범종등을 공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제에 의해 조직적인 문화유산 반출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당시 가져간 문화유산을 조선공예전람회라는 전시회를 통해 사고 팔았고, 그렇게 해서 1934년부터 1941년까지 8년 동안 우리나라의 국보 보물급 문화유산 14,000점이 반출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해서 운흥사 범종이 그 당시 반출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와 운흥사측은 네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운흥사 범종을 똑같이 복제하여 운흥사에 봉안하는 민간교류부터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운흥사 범종을 통해 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의 역할을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제안에 대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속적인 노력과 교류를 통해 서로가 마음이 통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나아가 저는 해외문화유산에 대해 정부에 한 가지 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에 해외문화홍보원이 있습니다. 해외홍보문화원은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27개국 31개소에 한국문화원을 두고 있고, 일본, 중국, 영국, 미국 등 8개국에 한국문화홍보관을 두고 있습니다. 해외홍보문화원은 한국문화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해 품격 있는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고, 문화예술의 해외 활동 소개 및 지원을 통하여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업무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한국문화홍보관을 통해 해외에 소재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실상을 파악하고, 무조건적인 환수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현지의 기관이나 박물관, 개인등 소장자들을 설득하여, 현지에서 한국의 문화유산 전시회를 하도록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해외의 기관이나 박물관, 개인이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귀중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더욱 소중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나라 문화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이며, 그것이 품격 있는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품격 있는 법치주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2017년 1월 26일 법원은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서 2012년 한국의 절도범들이 훔쳐온 서산 부석사의 관음보살좌상에 대해 부석사에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고, 같은 달 31일 검찰이 낸 불상 인도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현재는 부석사도 아닌 국가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재판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입니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불경스러운 말이 될 수도 있지만 관음보살좌상은 명백히 우리나라의 절도범들이 일본에서 훔쳐 온 장물입니다. 1970년 유네스코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전문을 보면 “자국 내 영역 내에 존재하는 문화재를 도난, 도굴 및 불법적인 반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에 부과된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도 외국 문화재가 불법 반출된 것이라면 이를 반환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산 부석사의 관음보살좌상은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국가가 장물아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훔쳐갔던지, 팔려갔던지 현재는 일본에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있는 문화유산을 훔쳐 온 것을 우리 소유로 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입니다. 일단 돌려주고 절차에 따라 반출 경위를 조사해서 협상을 통해 반환받도록 해야 합니다.
20개국에 소재하고 있는 167,968점의 해외문화유산은 환수를 하거나, 환수를 하지 못해도, 문화유산이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 반만년의 역사를 알려주고,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정신을 알려주는 문화유산입니다. 이번 2017 네즈미술관 소장 운흥사 범종 반출경위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통해 여법하고 품격이 있는 해외문화유산의 반환대책과 현지 활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운흥사범종
김창균 동국대교수
1. 운흥사 연혁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臥龍山 향로봉 중턱에 자리한 운흥사는 대 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하동 쌍계사 말사로서,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 년 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절의 규모는 현존 산내 암자 천진암과 낙서암을 비롯하여 아홉 군데의 암자가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승병대장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6,000여 명 의 승군들이 머물렀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컸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곳곳 에 남아있는 건물터와 高僧들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僧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임진왜란 때의 병 화로 인해 소실되어 버린 것을 효종 2년(1651년) 법성(法性)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래 사격이 크게 무너져버린 지금은 영조 7년(1731년)에 중건되고 1965 년에 보수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다포계 건물인 대웅전(경상 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을 비롯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 축물인 영산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7호)과 冥府殿, 梵鍾樓, 山神閣, 요사 채 등이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은 승군이 죽은 날로 기록되는 음력 2월 8일이면 국난 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호국영령들을 위한 靈山齋가 열린다.

운흥사 전경
2. 운흥사 소장 불교문화재
현재 운흥사에는 국가문화재인 掛佛圖와 水月觀音圖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甘露王圖, 阿彌陀後佛圖, 藥師後佛圖, 木造三世佛坐像, 佛經木板 등이 소장되어 있다.
괘불도는 세로 1,060㎝ 가로 738㎝ 크기의 밖에 내거는 불화로 1730년 18 세기 대표 화사인'의겸'이 首畵僧을 맡아 조성한 靈山會掛佛圖(보물 제1317 호)이며, 석가삼존불상을 앞쪽에 배치하고 뒤쪽으로 2위의 타방불과 관음 ․ 대세 지보살상을 배치한 七尊圖 형식이다.
수월관음도(보물 제694호)는 영산회괘불도와 함께 1730년'의겸'이 수화 승을 맡아 그린 불화로 세로 240㎝ 가로 172㎝ 크기이다. 비단바탕에 그린 관 음보살도로서 남인도 보타락가산 거주의 관음보살이 구도여행을 하는 善財童子 의 방문을 맞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감로왕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6호로서 부처의 수제자인 目連尊者가 아귀도에서 거꾸로 매달리어 고통에 빠져 있는 어머니를 구한다는『盂蘭盆經』 의 내용을 도상화 한 것으로 부모에 대한'孝'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아미타후불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7호)와 약사후불도(경상남도 유형문 화재 제358호)는 대웅전 삼세불상의 후불도로서 살아서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는 극락왕생을 현세불인 석가불께 기원하는 의미의 三世後佛圖 중의 두 폭이다.
목조삼세불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8호)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불상으로 중앙의 석가불상과 왼쪽(向右)의 약사불상, 오른쪽(向左)의 아미타 불상 삼불로 구성되어 있다. 『朝鮮寺刹史料』「臥龍山雲興寺大雄殿佛像改金重 修記」에 의하면 1649년 조성하여 1740년에 개금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운흥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8호
불경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4호)은 1464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것 을 1702년 복간한『금강경』,『법화경』권 1,『아미타경』,『고왕관세음경』, 『다라니경』등 모두 16종 194판이다.
불경목판
3.운흥사 범종의 특징
운흥사 범종은 조선 숙종 16년인 1690년에 조성된 범종으로서 지금은 일 본 동경시내에 위치한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鍾口가 벌어져 사다리꼴을 이루는 몸체에 雙龍鈕를 한 전형적인 중국 종 양식을 따르고 있는 조선시대 범종으로, 종 정상부 天板에는 覆蓮帶가 마련 되어 있다. 종 어깨에는 上帶 대신 梵字(六子大明王眞言 ; 옴, 마, 니, 반, 메, 훔)가 들어 있는 圓圈紋이 주의로 빙 둘러져 있으며, 종 몸체 하단에는 蓮花唐草紋帶가 둘러지고 중간부분에는 네 곳에 각기 9개씩의 蓮蕾가 자리 한 蓮廓帶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연곽대 사이마다에는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합장한 채 서 있는 帝釋天·梵天 추정의 보살형 존상이 각 1구씩 배치 되어 있다. 4구의 존상은 원형 머리 광배와 佛衣式 法衣를 착용하고 연화좌를 밟고 있으며, 존상 옆의 위패 모양 명문구획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의 '主上殿下壽萬歲'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殿牌가 자리하였다.
연곽대와 보살형 존상 사이 아래쪽으로는 "강희이십구년경오오월일 고성현 서산령와룡산운흥사대종 중오백근 대종대시주 김호성 대시주 최□학 가선대 부경윤 시주 조성□ 대시주 □묵 겸대종대시주 이삼□ 대시주 노□□금 대 시주 이□찬 통정대부 김애립 김예발(康熙二十九年庚午五月日 固城縣西山領 臥龍山雲興寺大鐘 重五百斤 大鐘大施主 金好成 大施主 崔□鶴 嘉善大夫敬允 施主 趙成□ 大施主 □黙 兼大鐘大施主 李三□ 大施主 盧□□金 大施主 李 □賛 通政大夫 金愛立 金發)이라는 긴 내용의 명문이 선각되어 있다.
명문 끝부분의'통정대부 김애립(通政大夫 金愛立)과 김예발(金禮發)'은 운흥사 범종을 주성한 장인이다. 이 가운데 특히'김애립'은 '김용암(金龍 岩)' '김상립(金尙立)'과 더불어 당대를 대표하는 사장계(私匠系) 주종장 으로서,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여수 흥국사 범종(1665년, 보물 제1556호)과 고흥 능가사 범종(1698년, 보물 제1557호)은 '김애립'이 주성한 대표적인 유물이다.
거의 손상 없이 전해오는 1690년'김애립'주성의 네즈미술관 소장 고성 운흥사 범종 또한 범종의 형태 및 구성상의 특징과 천판의 복련대와 종 어 깨의 범자 원권문, 몸체의 연곽대와 돌기 형태의 연뢰, 보살형 인물상과 위 패형 명문구획, 하대 문양대 등이 완벽하여 국가문화재급으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4. 운흥사 범종의 반출 경위
일본은 1915년 조선총독부 간행의『조선고적도보』1∼15책을 통해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1910년 강제 한일합병과 더불어 조사를 핑계로 전국에 걸친 우리 문화재를 파악하고 도굴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이후 1937년의 중 일전쟁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1941-1945)이라는 전쟁의 확산과 함께 전 쟁물자 확보를 위해 공출제도를 실시하였고, 전쟁에 직접 필요한 무기 제작 을 목적으로 금속기의 강제 공출이 시작되었다.
농촌에서 사용하는 농기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사용하 는 집기와 더불어 종이나, 사찰의 의식구 및 범종까지도 징발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조사 및 징발령과 함께 운흥사 범종 또한 공출되기에 이르 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범종의 빼어난 자태로 말미암은 예술적 가치 및 봉안사찰 및 주종 내력을 알 수 있는 명문이 확실하게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를 알아채고 일본으로 밀반출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편으로는 조선총독부가 후원하고 일본 귀족들과 미술 단체가 주관하 여 1934년부터 1941년에 이르기까지 8년 동안에 걸쳐 오사카와 도쿄 등에 서 조선 문화재의 장터를 가장한‘조선공예전람회’를 일곱 차례 열어, 한 차례 당 1,500~3,500점의 우리 문화재가 거래됨으로써 계획적이고도 조직적인 조선 문화재의 반출이 짐작된다.
『조선고적도보』전 책과 1940년 동국대학교도서관 측에서 조사 하여 手記로 기록해 놓은『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1∼26권 전 권을 살펴보았으나 운흥사 및 범종에 대한 내용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위 두 자료에 규모가 컸었던 운흥사에 대한 기록 및 범종 내용이 보이지 않 는다는 것은 어쩌면『조선고적도보』간행 이전, 또는『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기록 이전에 이미 반출되었을 것으로도 판단해 볼 수 있겠다.
한편 네즈 가이치로가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1910년 이후 1915년에 이르기까지 조사를 마친 뒤 철도 부설과 함께 이즈음 반출하였을 것이라는 짐작 또한 가능할 것이 다.

5.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과 운흥사 범종
네즈미술관은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미술관으로서 도부 철도 등 토부 그룹의 창업자 네즈 가이치로(초대)가 수집한 일본과 동양의 고미술품 컬렉션 을 보유·전시하고 있다. 네즈 가이치로의 뜻에 따라 2대 네즈가 1940년에 재단 을 창립하여 이듬해 네즈 저택에 미술관을 열었으나, 1945년의 도쿄대공습으로 인한 화재로 전시실과 다실 등을 포함 저택은 소실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장 품은 피난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종전 이듬해에 전시관을 다시 개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미술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네즈 가이치로는‘철도 왕’으로 남조선철도의 이사로 취임한 바 있으며,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하였다.‘남조선철도’라는 명칭의 노선은 광주-여수 간 75마일, 순천-영산포 간 86마일 등 모두 160마일로 전라도 및 경상도의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반출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바다와 가깝고 여수, 순천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운흥사야 말로 규 모가 크고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찰로서 약탈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며, 공출령을 빙자한 범종의 일본 반출 역시 네즈 가이치로의 ‘남조선철도’를 통해 밀반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6.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우리 문화재
네즈미술관에는「운흥사 범종」 이 외에도 현재「아미타구존불래영도」를 비 롯하여「아미타독존불도」,「아미타삼존불도」3점,「석가삼존16나한도」, 「지장보살도」등 고려불화 7점과, 고려시대 석조승탑 1기 등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