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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천지] [기획④] 인생의 진리 깨닫고 해탈하고자 했던 聖者 ‘석가모니’(1)
등록일
2017.11.18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16

2014.11.05 09:35:40  
정현경 기자  |  sevi@newscj.com


 

안락한 왕자의 지위 버리고 
‘생로병사’의 답 얻고자 출가

35세 크게 깨달음 얻고 교화
500년 후 예수 출현 예언해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OMSC)가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구촌 약 71억 인구 중에 종교인은 약 88%이며 그중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등을 포함하는 기독교(약 33.3%)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은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며 2013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 2551개 언어로 번역(세계성서공회연합회 발표)됐다. 우리나라도 기독교 인구 비율이 높아 종교인 57.6% 중에 기독교 인구는 36.7%(개신교 22.5%, 천주교 14.2%)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불교가 18.1%로 나타났다(대한불교조계종 고산문화재단 발표, 2014년 4월 기준).

불교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7.2%(5억 50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국교(國敎)로서 문화와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재도 기독교에 이어 우리 사회에 영향력이 큰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일생과 그가 깨닫고자 했던 생로병사의 비밀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진리를 깨닫고자 했던 인도의 왕자

불교를 창시한 인도의 성자(聖者)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는 샤키야(Sā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성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찰이나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석존(釋尊),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의 붓다(Buddha)라고도 부른다. 붓다의 음역은 불타(佛馱)이며 약칭은 불(佛),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했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au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로 서양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흔히 부른다.

석가모니의 생몰년을 두고는 여러 주장이 분분한데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기원전 624년~기원전 544년으로 공식 채택하고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해 불교 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사용하던 불기를 통일했다. 중국·한국 등지에서는 탄생을 4월 8일, 성도(成道;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를 12월 8일, 입멸(入滅)을 2월 15일로 한다. 또한 남방불교에서는 탄생·성도·입멸이 모두 바이샤카월(Vaiśākha月: 4∼5월)의 보름날의 일이라고 하여, 이 날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한다.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산 기슭의 카필라성을 중심으로 한 샤키야족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는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으나 생로병사(生老病死) 등 인생문제에 깊이 괴로워하다가 29세에 출가(出家)했다. 당시 풍습에 따라 16세에 결혼해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解脫)을 구하고자 했던 그는 처자와 왕자의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도(道)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저명한 철인 아라카라마(Alākālama), 우다카 라마푸타(Uddaka Rāmaputta) 등 선인에게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배우기를 단념하고 스스로 당시의 수도법인 고행(苦行)을 6년간 강행했다. 한때 아버지로부터 사람이 와서 귀국을 권고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심신만 쇠약해져 이를 중단하고 우루빈라(優樓頻螺: Uruvilvā) 촌의 보리수(菩提樹) 밑에 정좌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마귀들이 나타나 이를 방해했으나 동요하지 않고 드디어 35세 때 크게 깨달음을 얻고(大悟成道), 이후 45년간 각지로 순방하며 교화(敎化)에 힘썼다.

이렇게 불교는 그의 설법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의 설법과 가르침은 ‘아함경’ ‘율장’ 등의 원시불교 경전을 통해 전해진다.

석가모니는 80세의 고령에 이르러 제자들이 시종하는 가운데 고요히 생애를 마쳤는데 그 유해는 최고 존경의 표시로서 화장됐다. 유골(遺骨)과 사리(舍利)는 왕후와 귀족들이 분배하여 각자의 나라에 가지고 가서 탑파(塔婆)를 세우고 봉양(奉養)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