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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닷컴] 영담 스님 "남해 대장경 판각지 복원은 당연"
등록일
2017.11.18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933
영담 스님 "남해 대장경 판각지 복원은 당연"
국회 세미나서 학계 중지 모으고 정계 지원 약속 받아
2014년 10월 08일 (수) 23:17:56
조현성 기자

고려대장경 판각지인 남해 유적을 복원하자는데 학계‧지역계‧정계가 뜻을 모았다. 

고산문화재단(이사장 영담 스님)과 남해군(군수 박영일)이 8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한 ‘남해 고려대장경 판각유적지 원형복원을 위한 정책개발 세미나’에서다.

행사에서는 문명대 명예교수(동국대)가 ;고려대장경 의의와 판각, 판고지 문제‘를 주제로 기조발제했다. 박상국 원장(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고려대장경 판각성지, 남해‘, 김미영 조사연구팀장(남해군 고려대장경 판각지 유적 발굴조사와 향후 과제’, 이원태 연구기획조정실장(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남해군 고려대장경 판각지 관광자원화’를 발표했다.
 
   
고산문화재단 이사장 영담 스님은 1994년 불교방송발굴조사팀을 통해 최초로 남해 대장경 판각지 발굴을 시도한 주인공이다. 스님은 남해 판각 유적의 원형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4불교닷컴

“남해 유적지 복원 바로 착수하자”
 
고산문화재단 이사장 영담 스님은 “행사를 국회에서 개최한 것은 정부와 여야 모두에게 남해 고려대장경 판각유적지 원형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라며 “행사가 남해군 고려대장경 판각유적지의 조속한 원형 복원으로 결실을 맺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종호 스님(남해 화방사 주지)은 인사말에서 “1994년 영담 스님이 최초 발굴을 진행한 이래, 고려대장경 판각지 유적을 찾기 위한 정밀시굴조사와 발굴사업을 이어왔다. 고려대장경 판각 남해유적지 복원사업은 현재진행형이다”고 했다.

박영일 남해군수는 환영사에서 “남해 고려대장경 판각지 성역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 달라”고 했다.

여상규 국회의원(남해‧새누리당)은 축사에서 “영담 스님이 하는 일이라면 사실이다. 문명대 명예교수 등 학계에서도 보증하는 일이니 유적지 복원사업이 바로 착수되길 바란다”고 했다.
 
   
▲ 남해 화방사 주지 종호 스님은 "남해 판각유적지 복원 사업은 지역국회의원인 여상규 의원과 박영일 남해군수와 불교계가 합의한 대로 국가사업으로 진행, 완료돼야 한다"고 했다. ⓒ2014불교닷컴

김장실 국회의원(새누리당)은 “오늘 세미나가 남해 판각지 성역화 사업이 복원을 전제로 한 발굴사업으로 규정돼야 하는 문제와 국가사업 승격 여부 과제를 푸는 열쇠가 되길 바란다. 논의되는 다양한 의견을 향후 의정활동에 적극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주호영 국회의원(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고려대장경 관련 논란에 대한 결판을 내 달라. 국회가 할 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장윤석 국회의원(새누리당)은  “새누리당 불자회장으로서 남해 대장경 유적 복원사업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돕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격려사에서 “새누리당도 고려대장경 유적지 복원사업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겠다. 나아가 고려대장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거울삼아 국정 전반에 걸쳐 혁신 드라이브를 더욱 힘차게 걸겠다”고 했다.
 
   
(왼쪽부터) 남해 대장경 유적 복원 사업 지원을 약속한 여상규ㆍ주호영ㆍ장윤석ㆍ김무성 국회의원 ⓒ2014불교닷컴

강화 판각설 최초 주장자도 남해 판각 동의

문명대 명예교수(동국대)는 이날 기조발표에서 자신의 가설을 수정해 “대장경은 강화와 남해에서 절반씩 조성했다”고 했다. 문 명예교수는 40년 전 고려대장경의 강화 선원사지 판각설을 최초 주장했다.

문 명예교수는 “‘강화도 고려대장경 판각설’ 이후 제기된 새로운 판각지 연구성과를 수용해 가설을 수용했다”며 “▷고려대장경 판각 당시 무신정권의 최고실력자였던 최이(우)와 최항 부자가 강화에는 고려대장도감, 남해에는 분사대장도감이라는 국가공식기구를 설치했고 ▷이 두 기구를 설치할 때부터 남해 분사대장도감 운영을 정안에게 일임했으며 ▷이로 볼 때 전기(前期)에는 강화에서, 후기(後期)에는 정안이 남해에서 고려대장경을 판각했다”고 했다.

문 명예교수는 “강화와 남해에서 판각한 대장경의 수량은 반반씩으로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하다”고 했다.
 
   
▲ 문명대 교수는 자신이 40년 전 주장한 대장경의 강화 판각설을 수정해 남해에서도 대장경이 판각됐을 것이라고 했다. ⓒ2014불교닷컴

“남해 판각설은 문헌ㆍ유적이 증명”

박상국 원장(한국문화유산연구원)은 “고려대장경을 새긴 분사대장도감은 (고려국) 분사 (남해) 대장도감”이라며 “대장경은 강화가 아닌 남해에서 판각됐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고려대장경 판각성지, 남해’에서다.

박 원장은 “남해 분사라는 말도 없고 대장도감 분사라는 말도 없었다. 선입견 탓에 그동안 ‘분사 대장도감’이 잘못 알려져 있었다”며 “남해는 대장도감 분사가 아니라 대장경판 판각을 위해서 지방관아를 통솔 할 수 있는 고려국 분사가 설치됐던 곳이다. 남해는 대장도감이 설치됐던 곳이 맞다”고 했다.
 
   
▲ 박상국 원장
박 원장은 “대장경 판각지가 강화 선원사로 잘못 알려져 있다. 선원사는 고려무신 최우의 원찰이고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에 임금이 강화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을 보러 용산강에 행차했다는 기록 때문에 고려대장경은 선원사에서 판각했다는 오류가 생겨났다”고 했다.

박 원장은 “선원사는 대장경 판각이 끝날 무렵인 고종 32년(1245)에 창건됐다. ‘공민왕 9년(1360) 윤 5월에 왜가 강화를 노략질하면서 선원사와 용장사로 침입해 300여 명을 살육하고 쌀 4만여 석을 약탈해갔다’는 기록으로 짐작컨대 당시 대장경판이 선원사에 있었다면 무사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박 원장은 “고려대장경은 최이가 판각을 주도했고, 경남 남해에서 했다”고 단언했다. 그 이유로 진양(現 진주) 일원이 최충헌 이래 최씨 무신정권의 식읍지였다는 것을 꼽았다. 관련 기록을 종합하면 대장경은 최이의 뜻에 따라 국자제주를 그만둔 최이의 처남 정안이 고종 28년(1241) 이후 남해로 내려가 실제 판각 작업을 주도했다는 설명이다.

박 원장은 “대장경판을 조사한 결과 대장도감만이 아니라 분사대장도감에서 간행한 것이 섞여있다. 이 두 곳에서 동시에 같은 사람이 새긴 것도 있다”며 “이는 대장도감과 분사대장도감이 동일한 장소가 있지 않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 김미영 팀장
그러면서 분사대장도감에서 찍어낸 <종경록> 권27의 ‘고려국 분사 남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