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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영담 스님 “잠시도 헛되게 시간 보내지 말라… ‘不息寸陰’의 가르침 생생”
등록일
2023.03.22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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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스님 10일 49재… 쌍계사 주지 영담스님의 ‘思父曲’
스승 고산 스님(왼쪽)의 안경을 살펴보고 있는 영담 스님. 2018년 스승과 제자는 여행을 떠나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영담 스님 제공
스승 고산 스님(왼쪽)의 안경을 살펴보고 있는 영담 스님. 2018년 스승과 제자는 여행을 떠나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영담 스님 제공
펼쳐진 책과 손때 묻은 공책, 오래된 경전 테이프, 종이학….

6일 경기 부천시 석왕사를 찾아 둘러본 고산 스님의 거처에는 3월 23일 88세로 입적한 스님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과 계율(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 쌍계총림 방장을 지낸 스님은 종이학 접기를 비롯해 손으로 하는 것은 못하는 게 없었다고 한다. 10일 오전 10시 반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치러지는 49재를 앞두고 맏상좌이자 쌍계사 주지인 영담 스님을 만나 스승인 고산 스님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 고산 스님의 임종게(臨終偈)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春來萬像生躍動·춘래만상생약동)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秋來收藏待次期·추래수장대차기) 내 평생 인사가 꿈만 같은데(我於一生幻人事·아어일생환인사)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今朝收攝歸故里·금조수섭귀고리).’

고산 스님이 남긴 임종게다. 요즘 스님들의 임종게는 제자들이 쓰는 경우가 많지만 고산 스님의 임종게는 입적 2개월 전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됐다. 몇 년 전 큰 고비를 넘긴 뒤 매년 임종게를 썼다고 한다. 고산 스님의 생일 무렵 제자들이 모이면 가벼운 입씨름이 오갔다. “임종게를 뭐 하러 매년 쓰십니까. 100세까지 사실 텐데.”(영담 스님) “내 수명은 여든셋이 정명(定命·정해진 수명)인데 영담이 덕분에 더 살고 있다.”(고산 스님)

영담 스님은 임종게에 대해 “봄은 시작을 알리고, 가을은 결실 아니냐”며 “평소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영원한 것은 없고 시작과 함께 돌아온 길로 간다는 이치를 전하고 있다”고 했다. 고산 스님은 언젠가 있을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노스님들의 장례에 참석해 쓴 추모글과 법문, 사찰 창건에 얽힌 옛날 금전출납부까지 꼼꼼히 챙겨 남겼다.
 

○ 영담 스님의 사부곡(思父曲)

불교에서 스승은 속세의 아버지에 비유된다. 특히 13세 때 출가해 50여 년 고산 스님의 곁을 지킨 영담 스님은 더욱 그렇다. 49재 때 헌정되는 추모 사진집에 영담 스님이 쓴 글에는 이런 심정이 절절이 담겨 있다.

“1967년 가을 어느 날, 첩첩산중 청암사 극락전 골짜기에서 스님을 처음 뵙고 반평생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때로는 엄한 스승이었고, 때로는 따뜻한 어머니셨고,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셨습니다. 스님 앞에서 저는 여전히 13세 행자이고, 스님은 저에게 이 세상 전부이셨습니다.”

1970년 고산 스님(왼쪽)과 영담 스님. 영담 스님 제공
1970년 고산 스님(왼쪽)과 영담 스님. 영담 스님 제공

고산 스님은 경·율·론(經律論) 3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적 원로이자 평생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그만큼 자신은 물론 제자들에게도 엄한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어릴 때는 많이 힘들었다. ‘세속에서는 가정교육, 출가는 스승교육인데 그것이 안 돼 있으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게 고산 스님의 가르침이었다.”(영담 스님)

고산 스님은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삶과 잠시도 헛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 불식촌음(不息寸陰)의 모범이었다.

“어느 날은 전화를 걸어 ‘장독대를 만들고 김칫독을 묻어라’ 하고, ‘내일 아침은 영하로 떨어지니 농사지은 배추를 잘 덮어 두어라’고 하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1975년 쌍계사 주지로 부임해 밥 먹기도 어려웠던 이 도량을 가꾸기 위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동분서주하며 46년간 이 산중을 지키셨다.”(영담 스님)

석왕사 옆에 새로 들어선 건물 4층에는 스승의 건강이 좋아지면 새 거처로 쓰려던 공간이 있다. “햇볕 잘 드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고 했는데 결국 모시지도 못하고…. 이 공간은 기념관으로 조성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제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담 스님은 “제자들은 평소 늘 말씀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 불식촌음의 가르침을 유언 삼아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